posted by 나무꾼 나무꾼! 2011.01.16 01:20

거의 모든 IT의 역사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정지훈
출판 : 메디치 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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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이끈 변혁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는 것 보다 개방 과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유리하다는 것을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IT업계에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과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임원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관심있게 읽은 부분>
 
아인폰에서의 구글과 애플의 열애 와 이별


2007년 아이폰의 출시에 맞춰 아이폰 전용으로 구글지도,검색,메일 유튜브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유튜브가 애플의 퀵타임과 호환되도록 모든 비디오를 플래시가 아닌 H.264표준으로 작동하게 했다.
구글도 이미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면서 모바일 컴퓨팅시대를 이끌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아이폰의 성공을 보면서 비밀리에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구글과 애플은 최고의 경쟁자로 돌아섰고 애드몹, 쿼트로 와이어리스, 라라 등 업체의 인수경쟁에서 서로 1위, 2위 업체를 가로채듯이 인수하면서 완전한 적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아이폰은 기본검색을 공동의 적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빙으로 교체했고 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용중인 구글 지도 역시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페이스북의 부흥 과 마이스페이스의 몰락

페이스북과 자웅을 겨루던 마이스페이스는 5억8천만원의 거액에 뉴스코퍼레이션에 인수 되었지만 미디어 그룹 특유의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인해 개방형 혁신과 서비스를 추구하지 못하였고 유튜브를 비롯한 컨텐츠 제공업체들의 연계 제의를 거부하고 오히려 경쟁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면서 성장을 지속하지 못했다.
또한 상장회사에 편입되었기에 주주들의 압력에 못이겨 수익을 위해 여기저기 광고를 도배하면서 불편함을 초래하였고 많은 사용자들이 마이스페이스를 떠나 페이스북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특히 구글의 검색엔진을 장착하면서 페이지 뷰 수에 따른 계약을 맺었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용자를 속여서 강제로 광고를 클릭하게끔 만드는 돌이킬수 없는 최악을 수를 두면서 더이상 회복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구글의 기업 문화

대학원 프로젝트로 출발한 구글의 검색 엔진 서비스는 폭발적인 사용자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고 100만 달러만 지불하면 매각할 생각으로  알타비스타, 야후와 접촉하였지만 번번이 거절 당하고 말았다.

이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던 지도교수 데이비드 체리톤은 창업을 권유하고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야후에서는 구글의 검색엔진이 너무 뛰어나서 사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고나서 금방 야후 페이지를 벗어나기 때문에 매리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팔로알토에 자리를 잡은 구글은 누구나 새벽까지 먹을 수 있는 간식을 구비해 두었고 회의실에서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의탁자겸 탁구대를 구매하는 등 최초의 놀이터형 회사를 만들었다.
마이스페이스와는 달리 구글은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사용자를 만족시켜주는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기업공개 과정에서 경영층이 가진 주식에는 1주는 10개의 의결권을 갖도록 해서 경영권을 보호했고 주주들의 압력을 피해 회사의 경영 방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구글은 초창기 부터 스톡옵션을 적극 활용해 직원들과 비젼을 공유했고 최초의 마사지사로 근무한 직원은 시간외 근무 수당을 스톡옵션으로 받는 현명한 선택을 한 덕분에 백만장자가 되어 스스로 재단을 설립하기 까지 했다.
 

 시대를 너무 앞선 제록스 파크

최초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는 제록스 파크에서 개발한 알토였고 알토를 본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통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후에 MS, 애플, 제록스가 GUI 관련 소송에 휘말렸지만 대응이 너무 늦었었고 Look & Feel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다.

최초의 볼 마우스 역시 제록스 파크에서 개발하였으나 너무 일찍 개발한 탓에 특허 기한이 만료되면서 실제적인 이득은 거의 얻지 못하였다.
 
희비가 엇갈린 빌게이츠와 게리 킬달

MS-DOS로 알려진 운영체제의 원조는 게리 킬달이 개발한 CP/M 이었고 IBM에서 건설턴트로 일하면서 데모도 하고 중요성도 설명하였으나 인텔에서는 당시 운영체제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게리 킬달은 따로 회사를 설립하여 CP/M 운영체제를 보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IBM이 뒤늦게 PC 시장에 진출하면서 CP/M 을 기본 운영체제로 사용하기 위해 방문했으나 그때 게리 킬달이 부재중이어서 업무를 대행한 그의 부인이 비밀준수계약을 거절하게 되면서 IBM의 실무진들은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 빌게이츠를 찾게 되었다.
마침 CP/M을 복제한 운영체제가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던 빌게이츠는 단돈 5만 달러에 라이센스를 사들여 IBM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나중에 IBM 빌 게이츠의 운영체제가 CP/M의 특허권을 침해한 사실을 알고나서 소송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CP/M을 빌게이츠의 PC-DOS와 동시 발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CP/M이 기술적으로 훨씬 뛰어났음에도 가격이 저렴한 PC-DOS를 선택하였다.
게리 킬달은 비록 경영능력은 뛰어나진 않았고 큰 부를 쌓지는 못했지만 컴퓨터 과학에서의 수많은 업적을 쌓아 지금과 같은 혁명을 있게 한 최고의 과학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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